머지않아 우리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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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가난의 폐허 위에서도 꽃은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 기적이 모락산 기슭에서 일어났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병을 낫게하고 삶의 열매를 거두도록 이끄셨다.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힘겹고 기쁘고 행복했던 시간들을 되돌아본다.

​첫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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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씨앗은 싹트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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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과 정착

1951년 광명리에서 오전리 모락산 기슭으로 성 나자로 요양원을 이전하고

옛 마을입구 정문 (1951년)

미군과 외국인 방문객을 위해 오전리 요양원 초입에 세운 안내표지판 앞에 선 조지 캐롤 안 주교님, 우리말로 하면

'성 나자로 가톨릭 나환자촌'이다.

1.1950년대 모습.jpg

1950년대 마을의 모습

마을에 첫 부임하신 이경재 원장신부님. 뒤로 50년대 마을 풍경이 보인다.

돌 나르는 모습 (1950년대)

초기 가족들은 모락산 기슭아래 마을 터전을 만들기 위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돌을 나르고 일을 했다.

초창기 환우들이 마을의 길을 만들고 있는 모습.JPG
마을가족들이 모두 나서 돌을 운반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JPG

​마을 길을 만드는 모습 (1950년대)

설립 초기 마을에 길이 없어 정착 후 생활을 위해 ​ 환우들이 함께 모여 길을 만들고 있다.

초창기 마을 환우들이 황무지를 개간하여 밭을 만들고 있다.jpg

밭을 만드는 모습

​설립 초기 마을 가족들이 정착을 위해 황무지를 개간하여 밭을 만들고 있다.

1950-60년대의 성 나자로 요양원 원생 숙소 이곳은 일제시대와 8.1
수수대로 만든 초기 성 라자로 마을 정문 입구.JPG

1950-60년대 생활모습

위 건물들은 일제 시대와 광복 이전까지는 폐결핵 환자들이 사용했지만 ​마을 설립 후 한센병 환우들이 사용하였다.

설립 초기 마을 정문

초기 마을에 정착할 때 수수대로 만든 마을 입구

성 나자로 요양원 아래에 있던 나환자들의 초가집.JPG

1950-60년대 생활모습 

성라자로 요양원 아래에는 이처럼 실제로 많은 환우들이 모여 열악하게 살아갔다.

초창기 환우들이 살던 집.JPG

1950-60년대 생활모습

마을 안에서 초기 환우들은 의식주도 제대로 못 갖추고 힘들게 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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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전경 (1960년대)

나병의 진료 및 연구를 위한 나자로의원이 설립되었다. (왼쪽 아래 건물)

마을의 전경2 (1973년, 구성당)

1953년부터 1972년까지 사용한 구성당(맨 오른쪽)이 보이며,

그 위로 새로 지어진 반석의집(여환우 숙소)이 보인다.

지금은 없어진

옛날 건물들

1953년 하한주 신분미 재임시에 환우들이 외부 목수들과 함께 직접 건축

문화관 낙성식 (1953년)

하한주 신부님 재임시에 환우들이 외부 목수들과 함께 직접 건축한 문화관. 매점, 식량창고, 철공소로 사용하였다.

1952년 이경재 신부님 초대 원장 재임시에 건립한 사제관으로 돌아가시기
라자로마을의 옛 성당 (1953-1972, 현재 치유의집 자리).jpg

이경재 원장신부님 사제관 (1999년 철거)

이경재 신부님 원장 재부임시에 건립한 사제관으로, 돌아가시기​ 직전인 1998년 까지 사용하셨다. 철거 후 같은 자리엔 현재 50주년 기념관이 있다.

라자로마을 옛 성당 (1953 - 1972)

철거 후 현재는 같은 자리에 치유의 집이 있다

노기남 대주교님이 1967년에 은퇴 후 생활하셨던 집.jpg
마을 환우들의 오락실, TV실로 쓰였던 다미안의집 (1971년 3월 7일

사제관

노기남 대주교님이 1967년 은퇴 후 생활하셨던 집

다미안의 집 (1971년 3월 7일)

마을 환우들의 오락실, TV실로 쓰였던 다미안의 집

매점으로 쓰였던 실비의집 1971년 건축. 철거년도 미상.JPG

실비의 집 (1971년 건축, 철거년도 미상)

​마을 매점으로 쓰였던 실비의집

봉사자들의 숙소,휴게실로 쓰였던 우리의집-1972년 건축.JPG

우리의 집 (1972년 건축)

봉사자들의 숙소, 휴게실로 쓰였던 우리의집

오전분교를 개축한 시초의집(만남의집) 철거년도 미상.jpg
1973년 준공한 라스콥 돼지집. 돈사 건축기금과 돼지 구입자금을 기부한

라스콥 돼지집 (1973년 준공)

돈사 건축기금과 돼지 구입자금을 기부한 미국 라스콥 재단에서 따왔다. ​현재 같은자리엔 엘리야의 집이 있다.

시초의 집(만남의 집, 철거년도 미상)

오전 분교를 개축한 시초의 집

시대상과 생활 

마을가족의 생활모습.jpg

빨래하는 마을 가족

마을 가족이 한겨울에도 온수 시설 없이 맨손으로 차가운 물에 빨래를 하고 있다.

마을가족의 생활모습 (1973년).jpg

생활모습

마을 가족이 집 뒷편에서 빨래를 삶고 있다.

감을 수확하는 마을가족들 모습 (1975년 11월).jpg
마을가족들이 들깨를 터는 모습.jpg

콩 타작 (1975년 10월)

마을 가족들이 한데 모여 다함께 콩을 타작하고 있다.

감을 수확하는 모습 (1975년 11월)

마을 곳곳에 있는 감나무에서 감을 딴 후​ 곶감을 만들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척박한 땅을 가꾸는 모습

마을 가족 남녀노소 모두 함께 모여 밭일을 하고 있다. (현재 샛별의집 위치)

짚으로 구유 지붕을 엮는 마을가족들 모습 (1989년).jpg

짚으로 성탄 구유 만드는 모습 (1989년 11월)

마을 가족들이 성탄 구유에 쓰일 짚을 엮고 있다. 

어린이들

​이경재 신부님과 아이들

이경재 원장신부님과 아이들이 마을 안에 모여 함께 웃으며 즐거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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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성모님상 앞 아이들

아이들이 한데 모여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마을 안 우물가 작두펌프를 놀이기구 삼아 노는 아이들의 모습.jpg

마을 우물가 어린이

아이들이 작두펌프를 놀이기구 삼아 놀고 있다. 

성당에 모인 어린이들의 모습 (1975년).jpg

마을 안 아이들 (1975년 1월)

마을 안 미감아(한센병 부모로부터 태어나 감염되지 않은 아이)들이​ 한데 모여 환하게 웃으며 박수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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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천국민학교  오전분교

아이들을 위해 신영증권에서 악기를 기증하고 있다.

고천분교 운동회 모습 년도미상.jpg

고천국민학교 오전분교 운동회

​학생들이 나뭇가지에 주전자와 공을 묶어 계주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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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니 신부님이 준 성탄선물을 들고 있는 아이들

​의무부 앞 스위니 신부님과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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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감아 입양 방송국 인터뷰 (1976년)

​미국으로 입양되는 아이들.

​법률 개정 등 입양이 힘겹게 성사되자 미국 언론에서도 관심이 높았다. 

의료 봉사

천주교 구라회장 스위니 신부의 지방순회 나이동 진료 광경.JPG

스위니 신부님 지방순회진료

천주교 구라회 회장인 스위니 신부님이 나환자들을 위해 ​지방을 돌며 순회진료를 하고 있다. 

초기 의무부

병원 신축 이전의 의무부. 의료봉사자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해 마을 환자들을 진료했다.

연세대 간호대학 출신 초기 의료 봉사자 박숙경 수산나.jpg
의원 설립 이전에는 세브란스병원과 성모병원 의료진들이 마을을 찾아 치료봉

의료봉사자 마을방문 진료

의원 설립 이전 세브란스병원과 성모병원 의료진이 마을을 주기적으로 ​방문해 진료봉사를 했다.

박숙경 수산나 간호사

일본 의료 봉사자(좌), 마을에 상주하며 의료 봉사해준​ 박숙경 수산나(우)가 마을가족을 진료하고 있다.

서울대 간호대학 학생들이 환자들과 만나 실습을 겸한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서울대 간호대학 학생들의 의료봉사

서울대 간호대 학생들이 마을에 찾아와 실습 및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마을에서 의료봉사를 하신 예수의 작은 자매회의 프랑스인 안드레아 수녀님.
서울치대 구라봉사회와 일본 국립 기후대학교 치과대학 봉사회가 성라자로요양

구라봉사회와 일본 국립 기후대학교의 봉사회

서울치대 구라봉사회와 일본 국립 기후대학교 봉사회가 성 라자로요양​ 병원에서 1979년 7월 1주일간 의료봉사를 했다.

수녀님 의료봉사

예수의 작은 자매회 소속 안드레아 수녀님(프랑스)이​ 마을에 파견나와 환우들을 돌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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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규태 박사 의료봉사

1997년부터 마을에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마을가족들의 진료해 주었다.

​최시룡 박사 의료봉사

1956년부터 일평생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의료봉사를 했다.

나까타니 치카히로 선생님, 의족 봉사  니시시마 고이치 선생님.jpg

​나카타니 치카히로 

1986년 나환우 23명의 얼굴을 성형해 주었고, 이후 10년간 마을을 찾아 봉사했다.

자원 봉사

신부님들과 초기 봉사자들

이경재 원장신부님과 알레인 신부님, 왼쪽부터 가부라키 레이코 여사, 이영옥 마르타, 박숙경 수산나 

청소년 적십자사 봉사자들이 마을에 방문해 야영봉사를 하고 있다.

청소년적십자 봉사단 마을 봉사 (1977년 8월)

★(상황 확인)마을 가족 공사005.jpg

​마을 개간 봉사

마을 가족들과 봉사자들이 가파른 언덕을 개간하고 있다.

4H 봉사단

4H 봉사단이 마을 길을 만들기 위해 흙을 퍼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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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사제마을 - 아론의 집 후편의 임야를 사제마을 부지로 조성하고 있다

기사사도회 봉사팀

안양 가톨릭 운전기사 사도회 봉사자들이 어르신들을 모시고 소풍을 가고있다. 

군인들과 청년 봉사단

​군인들이 마을 길을 닦고 본당의 청년 봉사자들이 나무를 심고 있다.

마을가족 어르신들께 한달에 한번 짜장면을 대접해주신 나눔의 짜장차 봉사자

나눔의 짜장차 봉사자들 (2018년)

마을가족 어르신들께 한달에 한번 짜장면을 대접해주신 나눔의 짜장차 봉사자들

서울 예장로타리클럽과 숙명여대 로타랙트클럽 봉사활동.JPG
매년 김장봉사를 해주시는 삼천리 임원부인회 봉사팀 (2014년).JPG

삼천리 임원부인회 봉사팀

매년 김장봉사를 해주시는 삼천리 임원부인회 봉사팀

서울 예장로타리클럽과 숙명여대 로타랙트 클럽 봉사활동 (2019년)

​매년 마을에 방문해 어르신들에게 말동무와 웃음을 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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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나무를 아름답게 가꾸는 시민정원사 봉사단 (2020년).JPG

마을 조경 봉사 (2020년)

경기도 시민정원사 봉사단이 성라자로마을에 있는 나무들을 전지하며 봉사하고 있다.

​삼성전자사랑봉사단

16년간 월1회 마을의 부족한 일손을 도우며 현재까지 봉사하고 있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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